새벽 3시, 한 배송 노동자가 7시 마감을 향해 달린다. 관리자가 바로 옆에서 감시하며 재촉하는 것은 아니다. 야간에는 대면할 손님도 없고, 길도 뻥 뚫려 있다. 서류상 그는 독립계약자, 즉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는 주당 60시간 가까이 일하고, 아파도 쉬지 못한 채 일을 이어간다. 한국의 산업보건 당국이 뇌심혈관계 질환과의 연관성이 뚜렷해진다고 보는 바로 그 문턱을 매주 넘나든다.
여기서 오래 붙들려 온 질문이 하나 있다. 이 과로는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가, 아니면 구조가 만들어낸 것인가. 겉으로는 분명 선택처럼 보인다. 아무도 그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선택’을 둘러싼 조건 전체가 이미 짜여 있다면, 그 선택을 온전히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번에 박사과정 제자들은 유다영·고태은 연구원들과 함께 JAPP, Digitalization, Precarious work, welfare state in Asia 특집호에 게재된 논문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1. 왜 이 문제가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중요할까
현대의 사회보장 제도는 하나의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노동은 ‘고용주-피고용인’이라는 알아볼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전제다. 누가 고용주인지가 분명해야 사회보험에 가입시키고, 산업안전을 규제하고, 노동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고용주는 이 모든 제도가 노동자에게 가닿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동아시아 발전주의 복지국가는 이 전제가 유독 단단하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복지 제도를 거의 전적으로 고용관계 안에 심어두었고, 그 관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겨두었다. 유럽이 보편적 제도나 범주 확장을 통해 비표준 노동자를 어느 정도 끌어안은 것과는 다른 길이었다- 고용보험의 확대도 사업장 규모를 기준으로 범위로 넓혀왔지, 다양한 ‘노동형태’에 주목하고 넓혀오지 못했다.
문제는 플랫폼 노동이 바로 이 전제를 정면으로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노동자는 계약서상 ‘독립’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설계한 알고리즘 노동과정에 종속되어 움직인다. 비용과 위험은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는데, 독립이라는 지위가 명목상 부여하는 자율성은 알고리즘 통제에 의해 속이 비어버린다. 우리는 이를 허구적 자율성이라고 특징지었는데 자율성이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율성이라는 겉모습이 비용과 위험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다는 뜻이다.
허구적 자율성은 세 가지 축의 조합으로 뜯어볼 수 있다. 1)계약상 독립성, 2) 노동과정 자율성(시간·과업·의사결정), 그리고 3) 비용부담 여부. 진짜 자영업이라면 이 셋이 나란히 정렬한다.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일하는 과정에서 실제 재량을 행사하며,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책임을 진다. 그런데 플랫폼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이 셋을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분리해낸다. 주유비, 통신비, 민간보험비 등 비용부담은 노동자에게 지우고, 계약적 독립성은 고용주 의무를 피하는 데 활용하고, 노동과정 자율성은 알고리즘 지시로 실질적으로 갉아먹는다.
2. 강압과 동의가 어떻게 한 몸이 되는가
여기서 한 가지 오래된 수수께끼가 되살아난다. 알고리즘은 노동자를 어떻게 굴복시키는가. 흥미로운 것은 알고리즘이 강압과 동의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실시간 감시, 배차, 제재를 통해 직접 강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처럼 설계된 인센티브를 통해 노동자가 스스로 더 많은 일을 떠안도록 유도한다. 더 빨리 배달물량을 처리하면 수입이 늘고 물량을 받는데 있어 우선순위가 올라가는 구조를 만들어두면, 노동강도를 끌어올리는 일이 합리적인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이 두 갈래가 모순 없이 맞물리는 이유는 그 밑에 깔린 불안정성 때문이다. 사회안전망도 없고 플랫폼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에게, 알고리즘의 요구를 따르는 일은 생계/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 압력은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이면서, 동시에 개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계산이 된다. 부라보이(Burawoy)가 공장 노동자들이 관리자가 정한 규칙 안에서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착취에 동의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플랫폼 알고리즘은 그 게임의 디지털판이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부라보이의 노동자들은 비교적 안정된 고용의 안전망 위에서 게임을 했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모든 비용과 위험을 홀로 진 불안정성 위에서 게임을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알고리즘으로 제조된 동의(Algorithmically Manufactured Consent, AMC)”라고 부른다.
강압적 규율에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조건,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허구적 자율성이 낳는 불안정성이라는 이야기다.
3. 942명에게 물었다
새벽배송 시장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에 좋은 사례다. ‘오전 7시 배송 완료’라는 절대적 시간 제약이 알고리즘 시간 압박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주고, 정규직·독립계약자·자영업자·긱 노동자가 같은 알고리즘 체제 아래 뒤섞여 일하기 때문에 법적 고용범주를 가로지르는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2024년 10월, 여러 플랫폼에서 밤 9시부터 새벽 7시 사이에 일하는 새벽배송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고, 최종 942명의 응답을 분석했다. 표본의 절반 이상(51.6%)이 독립계약자와 긱 노동자였고, 4대 사회보험에 모두 가입된 사람은 42.4%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사회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뜻이다.
분석은 두 단계로 갔다. 첫 단계에서는 노동자를 법적 지위로 나누지 않았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독립계약자냐 긱 노동자냐 하는 서류상의 구분을 잠시 밀어두고, 실제로 이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세 가지 특징으로 다시 묶었다. 하나는 1)계약적 독립성 — 여러 곳에서 일하는지, 아니면 한 플랫폼에 사실상 매여 수입 대부분을 거기서 얻는지. 2) 노동과정 자율성 — 일하는 시간과 순서, 방법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지. 3) 비용부담 — 차량과 장비를 사고, 사고 위험까지 개인이 떠안는지. 이 세 특징이 실제 응답에서 어떻게 조합되는지를 잠재계층분석(LCA)으로 살펴봤더니, 서류상의 고용지위와는 결이 다른 세 집단이 드러났다.
첫째, 부분 자율·독립 집단(Partial Autonomy with Independence, 이하 PA, 290명). 한 플랫폼에 매이지 않고 여러 곳에서 일하며(계약적 독립성이 완전하다), 차량유지비용이나 사고 위험 같은 비용을 크게 지지 않는다(비용부담이 가장 낮다). 과업과 의사결정에서 어느 정도 재량도 있다. 예를 들어, 여러 플랫폼 업체를 오가며 일하고 자기 소유의 비싼 장비를 떠안지 않은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한 플랫폼의 조건이 나빠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고, 배달이 유일한 밥벌이도 아니다. 그래서 세 집단 중 압력에서 가장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그만큼 일감과 벌이도 가장 적어서, 나름의 불안정을 안고 있다.
둘째, 높은 자율·높은 비용 집단 (High Autonomy with High Cost-Burden, 이하 HA-HC, 221명). 일하는 시간과 순서, 방법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정도가 세 집단 중 가장 높다. 대신 비용도 많이 진다. 예를 들어, 자기 차량을 소유하고 유류비·수리비·사고 책임까지 스스로 감당하지만, 언제 일할지 어떤 순서로 일할지를 실제로 자기가 정하는 사람이다. 일이 버거우면 거절할 수 있다. 비용은 무겁지만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정도 쥐고 있어서, 스스로를 과로에서 지킬 여지가 있다. 자율성을 얻는 대가로 비용과 위험을 지는, 이론에서 말하는 ‘진짜 자영업자’에 가장 가까운 집단이다.
셋째, 낮은 자율·높은 비용 집단(Low Autonomy with High Cost-Burden, 이하 LA-HC, 431명). 표본의 45.8%로 가장 큰 집단이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여지가 거의 없고(시간 자율성이 0에 가깝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재량도 낮다. 게다가 한 플랫폼에 사실상 묶여 수입 대부분을 거기서 얻는데(계약적 독립성이 낮다), 비용은 자기가 다 진다. 예를 들어, 한 플랫폼에 매여 그곳 수입으로 먹고살면서 차량과 장비 비용은 전부 자기 몫인데, 7시 마감이 하루를 통째로 지배해서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율성은 최소인데 비용은 최대. 이 연구가 말하는 허구적 자율성을 가장 그대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4. 무엇을 발견했나
첫 번째 발견은 과로의 얼굴이었다. 과로를 네 가지로 나눠 측정했는데 — 긴 노동시간, 과도한 업무량, 쉬지 못함, 아파도 일함 — 정작 높게 나온 것은 ‘아파도 일함'(51.2%)와 ‘쉬지 못함'(46.2%)이었다. 긴 노동시간(36.6%)이나 과도한 업무량(32.1%)보다 높았다. 플랫폼 노동자의 과로는 단순히 시간이 쌓이는 문제가 아니라, 몸이 아프거나 지친 상태에서 일을 멈추지 못하는 문제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발견은 세 집단의 과로 수준이 뚜렷하게 갈렸다는 것이다. 허구적 자율성의 특성이 가장 짙은 집단에서 과로가 가장 심했다.
여기서 통념을 뒤집는 대목이 나온다. 기존 연구는 흔히 ‘자율성이 자기착취를 부른다’고 봤다. 유연하게 일할 수 있으니 오히려 끝없이 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율성이 가장 높은 HA-HC 집단은 과로가 가장 낮았다. 시간과 과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알고리즘 압력에 저항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자율성이 없으나 비용부담이 높은 LA-HC 집단에서는, 알고리즘 통제가 과로를 유의하게 증폭시켰다 — 전체 효과의 약 20%가 알고리즘을 통한 경로였다. (진짜 자영업에 가까운, HA-HC 집단에서는 이 매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과로를 낳는 것은 알고리즘 통제 그 자체가 아니다. 저항할 힘을 이미 구조적으로 빼앗긴 노동자 위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 통제다. 노동시간/마감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으면, 그리고 배송 순서를 바꿀 수 있다는 정도의 자율성은 과로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7시 마감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는, 결국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같은 결말에 도달한다. 겉보기엔 자발적인 선택들이 구조적 취약성 위에서 쌓여 과로의 경로를 만든다. 이것이 AMC의 이중 구조 — 강압과 동의가 대립하지 않고 한 몸으로 묶이는 — 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지점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허구적 자율성(LA-HC) 집단의 크기다. 표본의 절반 가까이가 서류상으로는 독립계약자, 즉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으면서, 노동시간·과업·방법에 대해 거의 아무 재량도 행사하지 못한 채 가장 무거운 비용을 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으로 분류돼 있지만, 실제로는 지시받는 노동자처럼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종속은 ‘독립계약자’라는 이름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같은 독립계약자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 비교적 보호되는 PA 집단과 깊이 취약한 LA-HC 집단이 나란히 들어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고용분류가 실제 취약성을 가려내는 데 한계가 많은 잣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5.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
이 결과가 드러내는 것은 플랫폼 노동과 동아시아 복지국가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다. 이 지역의 복지국가는 사회보험도, 산업안전 규제도, 노동시간 보호도 오직 고용관계를 통해서만 작동시켜 왔다. 그 설계는 세 가지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고용주를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종속이 계약상 눈에 보이며, 국가가 고용주를 통해 노동자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 플랫폼 노동은 이 셋을 모두 위반한다. 고용주는 흐릿해지고, 종속은 직접 지시가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지며, 독립계약자로 분류된 노동자는 노동기준 집행 바깥으로 밀려난다.
더 곤란한 것은, 이 제도적 공백이 그저 ‘기술을 못 따라간 규제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데이터 같은 기반 자원을 쥔 기업은 규제 환경 안에서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규제의 규칙 자체를 설정하는 행위자가 된다. 쿠팡이 그 예다.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재분류하고 2021년 과로사 방지 노사정 협약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쿠팡은 규제 공백에 수동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공백을 능동적으로 만들고 넓힌다. 그 결과 플랫폼은 노동자의 총 노동시간을 추적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한할 법적 의무는 지지 않는, 기묘한 비대칭이 생긴다.
고용주 중심 복지국가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안전망의 부재와 낡은 노동법이야말로 노동자로하여금 알고리즘의 요구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 설계 자체가 노동자를 알고리즘 규율에 더 깊이 노출시킨다.
정책적으로는 세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첫째, 고용주를 식별하는 방식을 다시 짜야 한다. 형식적 종사상 지위 이름표가 아니라 노동과정 통제, 경제적 종속, 비용부담이라는 실질적 구조로 판단해야 한다. EU가 도입한 ‘고용 추정 원칙’ — 입증 책임을 플랫폼에 지워, 노동자가 진짜로 독립적이라는 것을 플랫폼이 증명하게 하는 방식 — 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둘째, 알고리즘 통제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노동법은 사람인 관리자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서, 인간의 개입 없이 과업을 배분하고 성과를 평가하고 제재를 가하는 자동화 시스템에는 미치지 못한다. 알고리즘 의사결정의 투명성, 그리고 배송구역 회수(‘클렌징’) 같은 자동 제재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셋째, 이 둘을 따로 떼어 하면 안 된다. 알고리즘만 규제하고 비용은 여전히 개인이 지게 두면 과로의 순환은 끊기지 않고, 반대로 알고리즘 관리를 손대지 않은 채 사회보험만 확대하면 과로를 생산하는 규율 장치는 그대로 남는다. 개인에게 떠넘겨진 운영비용을 재분배하는 일과 알고리즘에 투명성·책임성을 도입하는 일이 동시에 가야 한다.
겉으로는 자발적으로 보이는 과로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생산되는지 — 허구적 자율성과 알고리즘 통제가 고용주 없는 복지국가의 공백 속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 — 를 실증적으로 보인 것이 이 연구가 시도해본 것이다.
작년 새벽배송 논의에서 소비자의 권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넘어 우리의 시민성까지 침식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왜 스스로 몸을 갈아 넣는가. 이 연구에서 내린 결론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사실상 남겨두지 않은 구조에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의 제도가 가장 못 알아보는 방식으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이 부분은 계속해서 다양한 연구로 드러낼 부분이 아주 많다. 개인적 책임이자 자유로운 선택으로 귀결시키는 현재 자본주의 담론을 구조적인 시각에서 더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꾸준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