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알바, 나도 해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늘 궁핍한 대학원생으로서 나 역시 배달 일을 할 수 있다는 앱을 깔아 만지작거린 적이 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운동 삼아’ 배달을 하며 쏠쏠하게 부수입을 올린다는 ‘갓생’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러지 않는 스스로가 왜인지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배달, 택배, 데이터 라벨링 등 다양한 영역을 막론하고 플랫폼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매혹적인 문구다. 왜인지 잔잔한 브이로그 음악이 깔리고, 상쾌한 봄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이 상상된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나를 구속하는 계약서 없이.
달콤한 속삭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달콤함을 의심해봐야한다.
오늘의 글은 캐나다 Mcmaster 대학에서 진행된 이영롱 박사(Mcmaster University, Postdoctoral Research Fellow)의 세미나를 바탕으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물었더니…
이 연구는 페미니즘 연구에서 발전해온 ‘비가시화(Invisibilization)’이라는 개념을 플랫폼 노동 분석에 적용한다. 인정(recognition), 기술(skills), 시공간(temporal-spatial thesis)등 노동의 핵심 요소들을 교묘하게 지워버림으로써, 플랫폼 노동이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복잡한 지배구조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나쁜 애인’과의 연애를 상상해보자.
“우리.. 사귀는 사이였어? 쿨하고 자유롭게 만나던 거 아니었나? 부담스럽게 왜 구속하려고 그래”
이 (가상의) 나쁜 애인은 우리의 관계를 절대 남들 앞에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기술을 쓰며 서프라이즈와 이벤트를 해줘도 “그건 누구나 다 하는거야, 생색내지마”라며 깎아내린다. 구속하지않는 척 쿨하게 굴지만, 위치추적 어플은 깔아야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모순된 사람.
무시무시한 연애 잔혹사 같지만, 플랫폼 기업들의 방식과 닮은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 겹의 비가시화: 플랫폼이 노동을 감추는 방법
이영롱 박사는 플랫폼이 노동의 진짜 얼굴을 지우는 방식이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인정(recognition)’의 비가시화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라는 해방의 말은 사실은 고용주로서 책임져야 할 법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당장 생활비가 급한 학생, 본업 소득만으로는 불안한 정규직 직장인 까지. 현실의 벽에 부딪혀 9-6 고정 출근하는 노동자가 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 빈틈에서 플랫폼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 플랫폼은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두번째는 ‘기술(skills)‘의 비가시화다. “두 발만 있으면 됩니다. 도보도, 자전거도 오케이!” 플랫폼은 배달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순한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실제 배달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경로 최적화, 날씨와 계절에 따른 장비 선택, 시간대별 알고리즘 흐름을 읽는 고도의 실용적인 숙련과 노하우가 녹아있다(박수민, 2021). 플랫폼은 배달 노동의 이러한 전문성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배달 음식을 고정시키는 아이템이 배달 커뮤니티에서 핫하게 소개된 적이 있었다. 어떤 한 배달 노동자의 실천적 지식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가격은 약 3만원, 오롯이 개인 부담이다.
(좌) 인터넷에서 배달 관련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는 모습 (우) 관련 상품
(출처: 작성자 구글 검색)
세번째는 ‘시공간(temporal-spatial thesis)’의 비가시화이다. ‘언제 어디서나’라는 말은 자유처럼 들리지만, 노동자들은 실제로 콜을 놓칠까봐 더 자주 앱을 들여다보고, 비 오는 날 할증 알림에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길을 나서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 진다는 것은, 노동과 비노동의 경계도 함께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연대를 가로막는 균열
연구자가 주목하는 것은, 노동자 내부의 이질성이다. 한 쪽에는 위와 같이 부업으로, 운동삼아, 심심해서 하는 ‘유연한 노동자(the flexible)’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매일 앱을 켜는 ‘전업 생계 노동자(취약한 노동자, the vulnerable)’가 있다.
유연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녀의 연구따르면 한 부업 배달원은 노조와 관련하여 “그들과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어요, 솔직히 서로 관심도 없고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사는 세계는 다를까? 생계 라이더는 당장의 ‘생존’ 때문에 앱을 켜고, 부업 라이더는 내 고용이 언제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앱을 켠다. 사회의 불경기와 불안을 연료 삼아 플랫폼 기업은 돈을 벌고 있다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같다.
플랫폼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치유하는 구원자인척 하며 노동자들 간의 이질성을 키운다.
독박육아와 돌봄 부담 때문에 고정된 시간의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워킹맘들의 아픈 현실이 그러하다. 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플랫폼 앱을 켜는 주부들의 사례를 보자. 사회가 책임지지 못한 돌봄 불평등의 틈새를 파고들어 플랫폼은 개인화된 유연성으로 ‘생색’을 낸다.
퇴근 후 쉬어야 할 직장인들은 미래가 불안해 자투리 시간까지 쪼개 플랫폼에서 투잡을 뛰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가져다주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플랫폼은 기회를 잡고 있다.
플랫폼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사람들의 선택을 ‘스마트하고 유연한 N잡러’의 삶으로 포장하며, 전업 노동자들과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선이 굵어지고 연대의 힘이 약해질수록 미소를 짓는 건 누구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쁜 애인’ 플랫폼 가스라이팅의 핵심은 당신이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니다’ 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철저히 관계를 부정당한 채 착취당하면서도 이 비정상적인 구조를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자유”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플랫폼 바깥에서 흩어진 노동자들은 과연 어떻게 뭉칠 수 있을까? 각자의 처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알고리즘에 통제 받는 공통의 경험을 어떻게 연대의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이영롱 박사의 또 다른 연구를 소개하며,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본 내용은 2026년 3월 24일 Mcmaster University에서 진행된 이영롱 박사의 세미나 ‘Start without Pressure: (in)visibilisation of gig work through worker heterogeneity in Seoul”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유다영|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uda095@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