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불안정성의 개념과 규범적 판단 기준
책에서는 불안정성을 중심 개념으로 다루고 계신데, 학술적 정의를 넘어 실제 사례 연구 과정에서 교수님께서는 불안정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특히 모든 불안정성이 곧바로 문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텐데, 규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불안정한 상태는 어떤 조건을 충족할 때라고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불안정성(precarity)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제 연구의 출발점이자 가장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질문입니다. 학술적 정의로서의 불안정성은 고용 불안정, 소득 불안정, 사회보장 배제, 경력 전망의 부재 등 다차원적 속성으로 구성되지만, 현장 연구를 수행하면서 저는 이러한 정의가 포착하지 못하는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불안정성은 단지 “어떤 차원이 결핍되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을 규정하던 경계와 책임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배치되는가라는 과정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제가 ‘액화노동(melting labour)’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것도, 기존의 정규직/비정규직, 공식/비공식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로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액화노동은 노동을 정의하는 여러 경계들, 즉 작업장, 노동시간, 임금, 고용주(사용자)라는 경계가 녹아내리는 과정 자체를 포착하는 개념입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 종속적 자영업, 프리랜서, 플랫폼노동 등을 관통하는 공통의 속성을 이 개념을 통해 포착하려 한 것이지요. 저는 이를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재구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사용자 책임의 회피, 위험의 개인화, 비용의 전가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불안정성이 문제적인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일정한 이행기에서의 유연성이나 자발적 전환이 오히려 삶의 기회를 넓히는 경우도 있고, 불안정성을 곧바로 병리화하면 노동자의 행위성과 선택을 지워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규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불안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 첫째, 제도적 보호와의 부정합(institutional mismatch)입니다. 노동의 형태가 변화했는데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한국의 사회보험과 노동법은 산업화 시기의 표준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되었기에, 액화노동 종사자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법적 보호에서 배제됩니다. 이때 불안정성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제도적 실패의 결과입니다. 저는 이를 정책 표류(policy drift)로도 설명해왔습니다. 제도는 경직된 채 변화하지 않고, 노동의 현실은 빠르게 변화하며, 그 괴리가 구조적 취약성을 확대합니다.
✓ 둘째,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실패입니다. Esping-Andersen이 제시한 복지국가의 근본 목표는 노동자가 시장에서 상품으로만 취급되지 않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시장에서 마치 상품처럼 사고 팔리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대상이 될 때,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질문해보아야 할 문제적 불안정성입니다. 저는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장소득의 변동이나 일감의 중단이 곧바로 건강권, 안전, 기초생계, 회복 가능한 휴식, 그리고 삶의 재생산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인합니다. 플랫폼, 불안정 노동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간빈곤과 소득빈곤의 결합은, 단지 소득의 부족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규범적 개입의 강한 근거가 됩니다.
✓ 셋째, 은밀한 통제와 비대칭적 권력관계의 존재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알고리즘이나 다자간 고용관계에 의해 종속되는 상황, 저와 공동연구진(백승호 교수, 박은정 교수)들이 subordination without a subordinator(종속시키는 자 없는 종속)라고 명명한 현상이 작동할 때, 그 불안정성은 규범적 개입의 대상이 됩니다.
✓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 942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확인한 것처럼, 83.8%가 앱에 의해 업무 속도에 영향을 받고 75.4%는 성과를 유지하지 못하면 일감이 자동 취소될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통제 시스템’ 위에서 움직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종속성 하에서의 불안정성은 명백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요컨대, 제가 보기에 문제적 불안정성은 단지 불확실성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제도적 부정합, 사회권의 최저선 이하로의 하락, 그리고 통제와 책임회피가 결합된 권력 비대칭이 함께 작동할 때 가장 선명해집니다. 이 기준은 한국 사례를 넘어서, 제도 신뢰와 공식성이 다른 동남아시아 맥락에서도 비교 가능한 판단틀이 될 수 있습니다.
Q.’허구적 자율성’과 자발적 선택의 문제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허구적인 자율성’을 갖는 노동자의 불안정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의 플랫폼·새벽배송 논쟁이나 동남아시아의 비공식 노동 맥락에서도, 단순히 ‘몰라서’가 아니라 일정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불안정 노동을 선택하는 사례가 존재합니다. 스스로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인식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를 단순히 착각이나 이데올로기 효과로 환원하는 것이 타당한지, 현장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허구적 자율성(fictitious autonomy)’은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가장 정교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이며, 이를 단순히 ‘착각’이나 ‘이데올로기 효과’로 환원하는 것은 현장의 복잡성을 놓치는 것입니다. 저는 허구적 자율성을 “자율성이 거짓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율성의 경험이 어떤 구조적 조건에서 구성되고, 그 결과 위험과 비용이 어떻게 개인에게 이전되는가를 드러내는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새벽배송 노동자 연구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자신의 노동 조건을 ‘합리적으로 선택했다’고 인식했습니다. 한 쿠팡 정규직 5년차 배송기사는 “입사 초기엔 주간근무였지만, 최저임금 수준 기본급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야간수당이 있는 고정야간을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합리적 판단입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구조적 조건입니다. 선택이 존재하더라도 선택지의 폭, 배정의 규칙, 평가와 배제의 기준은 노동자가 아니라 플랫폼이 설계합니다. 그래서 핵심은 ‘선택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선택했느냐’입니다.
제가 제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최근 연구에서, Burawo가 ‘제조된 동의(manufactured consent)’라고 부른 것의 디지털 버전이 여기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장의 생산라인이 아니라 알고리즘 속에서 동의가 제조되는 것입니다. 쿠팡 플렉스 노동자는 앱을 통해 배송 가능한 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실제 배송 물량과 경로는 알고리즘이 결정합니다. 물량 할당 알고리즘은 과거 배송 이력, 평점, 배송 속도를 바탕으로 설계되어 있어, 노동자는 알고리즘이 정한 기준에 맞추어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도록 자발적으로 경쟁합니다. Cameron이 “지속적이면서 제한된 선택지들(constant and confined choices)”이라고 개념화한 것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선택지 자체는 존재하지만, 그 선택지의 범위와 조건은 플랫폼이 설계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노동자의 ‘착각’이나 ‘허위의식’으로 치부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장 연구에서 확인한 것은 보다 복잡한 양상입니다. 첫째, 노동자들의 자율성 인식은 비교의 맥락 위에서 형성됩니다. 이전의 공장 노동이나 콜센터 노동에 비해 시간 선택의 유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 자율성은 실재합니다. 둘째, 그러나 이 자율성은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미친 듯이 일해야 한다’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표현이 보여주듯, 선택의 자유는 곧 자기착취의 자유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셋째, 중요한 점은 이 자율성의 경험이 단순히 주관적 착오가 아니라, 플랫폼이 설계한 규칙과 인센티브, 평가·배제 메커니즘을 통해 계속 재생산된다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의 비공식 노동 맥락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됩니다. 비공식 부문에서의 자발적 선택은 공식 부문의 진입 장벽, 제도에 대한 불신, 관계적 네트워크의 보호 기능, 행정비용 부담 회피 등 복합적 요인의 결과입니다. 이를 단순히 이데올로기 효과로 환원하면, 노동자의 행위성(agency)을 부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가 취하는 입장은 이렇습니다. 노동자의 자율성 인식을 존중하되, 그 자율성이 작동하는 구조적 조건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게임의 규칙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위는 자율성의 실천이면서 동시에 정교하게 설계된 동의의 메커니즘일 수 있습니다. 핵심은 노동자를 비난하거나 무지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약과 비용 구조를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Q. 공식화의 한계와 최소 안전망의 구상
노동 형태의 분화와 함께 비공식·불안정 노동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식 노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전략만으로는 제도 밖 노동의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기존 제도에 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편입시키는 접근보다, 공식/비공식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공식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사회적 권리, 예컨대 건강권, 기초 생계 보장 등을 중심으로 한 ‘최소 안전망’을 적용하는 접근은 어떨지 고민해 봤습니다. 급진적으로는 기본소득과 같은 논의도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교수님에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기존 공식제도에 더 많은 노동 형태를 편입시키는 접근과, 노동 지위와 무관하게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접근 사이의 긴장은 복지국가 연구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제 연구는 한국의 사례를 통해 전자의 접근, 즉 공식 노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전략이 왜 반복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의 사회보험과 노동법은 산업화 시기의 표준적 고용관계에 있는 임금근로자를 보호 대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적 위험을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제가 ‘정책 표류(policy drift)’라고 부른 현상, 즉 제도는 경직된 채 변화하지 않고 노동의 현실은 빠르게 변화하는 괴리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질문에서 제안하신 ‘최소 안전망’ 접근에 저는 원칙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최소 안전망은 보완적(complementary) 전략이어야지 대체적(substitutive)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기초적 건강권과 생계 보장만 제공하고 노동법적 보호를 포기한다면, 이는 오히려 플랫폼 기업들에게 책임 회피의 구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쿠팡이 배송기사를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같은 구조가 정당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는 최소 안전망을 “기업 책임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지위와 무관하게 누구도 바닥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권리의 층위로 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론적 가능성과 분배효과에 대해 희망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맥락에서의 효과를 신중히 평가해야 합니다. 저와 백승호 교수가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누진적 보편주의를 실현하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더라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해 저소득층에게는 삶의 질 향상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고소득층에게는 효과가 미미합니다. 누진적 조세와 결합될 때 재분배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기본소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 연구에서 확인한 ‘이중빈곤’, 즉 시간빈곤과 소득빈곤의 동시 경험은 소득보장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단지 돈을 더 주는 문제를 넘어서,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추가 시장소득이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 다시 말해 탈상품화의 실질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소득과 함께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즉 의료, 교육, 주거, 돌봄 등 삶의 재생산에 핵심적인 영역에서의 탈상품화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플랫폼 노동에서 핵심인 안전보건, 노동시간, 알고리즘 책임, 배제와 취소의 통제 같은 규제적 요소도 함께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금 이전만으로는 위험의 구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다층적 제도는, 복잡하지만, 복잡한 것이 당연하게도 필요합니다. 일단 즉각적으로 고민해야 할 개혁 방향은 하나는 실질적 종속성을 행사하는 플랫폼 기업을 사용자로 인정하는 법적 기준의 현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 제공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회보장 체계의 구축입니다. 이 두 전략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Q. 제도에 대한 신뢰가 취약한 맥락에서의 공식화 전략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제도화가 반드시 양질의 노동을 보장한다는 신뢰가 약하며, 오히려 비공식적·관계적 관행이 더 유리하게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 주제는 앞서 2번 질문과도 연동되는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제도 확장이 실제로 불안정을 완화할 수 있을지, 혹은 자발적·합리적 판단에 따른 비공식 노동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제 연구를 비교연구 시각에서 확장할 때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맥락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으며, ‘공식화=양질의 노동’이라는 등식이 보편적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다양한 법제도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음에도 왜 이처럼 많은 불안정 노동자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제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답은 ‘법과 제도의 존재’와 ‘법과 제도의 실질적 작동’ 사이의 괴리에 있습니다. 한국의 발전주의 복지국가(developmental welfare state)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보호 체계를 구축했고, 이 체계 바깥의 노동자들은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왔습니다. 제가 ‘외부 비용 전가(external cost-shifting)’라고 부르는, 즉 대기업이 고용과 복지 비용을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한국의 압축적으로 발전한 사회보장제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불안정성을 재생산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비공식적/사적 관계적 상부상조의 관행이 더 유리하게 작동하는 현상은 이러한 제도적 부정합이 더욱 첨예하게 나타나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도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제도 자체의 설계 문제일 수도 있고, 제도를 집행하는 국가의 역량이나 의지, 혹은 행정비용과 부패 같은 집행 조건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무조건적 공식화 추진은 오히려 비공식 부문의 단기적 보호 기능마저 해체하면서 새로운 취약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공식적 관행의 ‘보호 기능’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관계적 보호는 본질적으로 불균등하고 불안정합니다. 후원-수혜 관계에 기반한 보호는 권력의 비대칭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보호의 범위와 질이 관계의 지속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저는 공식화를 단지 등록과 규율의 확대가 아니라, 실질적 보호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제안하는 접근은 맥락에 민감한 제도공식화입니다. 몇가지 원칙을 세워볼 수 있는데요, 첫째, 공식화의 목표 자체를 ‘기존 제도로의 편입’이 아니라 ‘실질적 보호의 확보’로 재정의합니다. 둘째, 비공식 부문의 긍정적 기능, 예컨대 유연성, 접근성, 관계적 지지 등을 제도 설계에 반영합니다. 셋째, 노동 지위와 무관한 보편적 사회권, 즉 건강권, 기초 생계 보장, 산업안전 등을 기본 층위(floor)로 구축하고, 그 위에 노동 형태에 맞는 추가적 보호를 설계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앞서 논의한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기본서비스와도 연결됩니다. ILO의 사회보호 바닥(Social Protection Floor) 개념이 바로 이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각 국가의 제도적·문화적 맥락에 맞게 구체화하는 것이 비교 연구의 과제입니다.
Q. 액화노동 개념의 적용 가능성
액화노동 개념은 기존 제도의 안정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의 노동제도가 과연 충분히 공고하게 작동해왔다고 볼 수 있는지, 혹은 원래부터 상당히 유동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근대적 노동 관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동남아시아 사례에도 이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지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한국 노동제도가 충분히 공고했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실 한국의 노동제도는 처음부터 이중적이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핵심 노동자를 위한 보호는 상대적으로 견고했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위한 보호는 처음부터 취약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히 확산된 것도, ‘견고한 제도의 해체’라기보다는 ‘원래 유동적이었던 주변부의 확대’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액화노동 개념은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을 포괄하면서도 이론적 틀로 유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이 개념을 통해 포착하려 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동의 개념적 경계 해체라는 보편적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과정과 제도적 보호 사이의 부정합이라는 분석적 틀입니다. 즉 액화노동은 “원래 안정적이던 것이 무너진다”는 단선적 설명이 아니라, 노동을 규정하던 경계가 형해화되면서 사용자 책임이 흐려지고, 그 틈에서 비용 전가와 실질 종속이 강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한국에서 액화노동은 제조업 기반의 하청화, 비정규직화에서 시작하여 서비스경제의 프리랜서화, 플랫폼 경제의 종속적/가짜 자영업화, 그리고 데이타 라벨러 등의 미세노동에까지로 이어지는 역사적 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일하러 가”라고 말할 때 전제되는 작업장의 경계,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라고 할 때 전제되는 노동시간의 경계, “누가 나를 고용했어”라고 할 때 전제되는 고용주의 경계, 이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사례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념의 핵심 메커니즘과 제도적 전제 조건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액화노동이 ‘견고한 제도의 해체’만을 의미한다면 적용 범위는 제한됩니다. 그러나 액화노동을 ‘노동의 경계가 유동화되면서 제도적 보호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넓게 이해한다면, 근대적 노동관계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맥락에서도 적용 가능합니다.
구체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은 비공식 경제를 ‘디지털화된 비공식성(digitalized informality)’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Grab, Gojek 등의 플랫폼은 전통적 비공식 운송업에 알고리즘 관리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종속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한국의 액화노동과 메커니즘적으로 유사합니다. 알고리즘에 의한 비인격적 통제, 형식적 자율성과 실질적 종속의 공존, 사회보호 체계의 부재가 결합합니다.
다만 한국과의 차이는, 한국은 ‘부분적 안정 위에서 경계가 녹아내리는 과정’이 중심 서사라면, 동남아시아는 ‘원래 유동적인 것 위에 새로운 통제 양식이 덧입혀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에 액화노동 개념을 적용할 때에는 ‘무엇이 녹아내렸는가’보다 ‘어떤 새로운 형태의 유동성과 통제가 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임과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봅니다.
Q. 연구자의 윤리성과 비판적 거리두기
교수님께서 연구 대상자에 공감하며 윤리적/성찰적으로 접근하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동시에 연구자는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정 노동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공감과 비판을 어떻게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불안정 노동 연구자로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현재진행형 물음입니다. 아마도 그 균형은 완벽하게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는 것 같습니다.
공감이 필요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불안정 노동자들의 경험은 통계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질적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배송 노동자 연구에서 한 노동자가 “알고리즘이 정한 시간 안에 배송하려면 화장실도 못 간다”고 증언할 때,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순간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비판적 거리 역시 필수적입니다. 세 가지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앞서 논의한 ‘허구적 자율성’ 문제와 직결됩니다. 연구 대상자가 자신의 상황을 ‘자발적 선택’으로 인식할 때, 공감만으로는 그 인식을 형성하는 구조적 조건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942명의 새벽배송 노동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노동 조건을 ‘어쩔 수 없는 것’ 또는 ‘나름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였지만, 구조적 분석은 그 ‘합리적 선택’이 낮은 가격-낮은 임금-(소비자에게)높은 편의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강제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둘째, 연구자가 특정 집단에 과도하게 공감하면 불안정 노동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개인 수준의 고통 서사로 축소할 위험이 있습니다. 현재 알고리즘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개별 노동자의 고통 너머에 있는 알고리즘적 통제의 체계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공감은 문제를 발견하게 해주지만, 구조적 분석 없이는 문제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습니다.
셋째, 연구 윤리적 차원에서 ‘과도한 공감’은 역설적으로 연구 대상자의 행위성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불안정 노동자를 순수한 피해자로만 재현하면 이들의 저항 전략, 적응 능력, 주체적 판단을 간과하게 됩니다.
학자로서는,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 연구자 및 ‘불안정노동과 사회정책 랩’ 연구원들과 저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합니다. 질적 연구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충실히 기록하되 양적 연구를 병행하여 개인 경험의 구조적 패턴을 확인합니다. 최근 김승섭 교수와 출간된 논문을 예를 들어보면, 942명 대상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결합한 혼합방법론이 그 예입니다. 또한 노동자의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조건을 살펴보며 동시에 그 사이의 간극 자체의 발생도 연구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연구들을 바탕으로 고태은 선생과 진행한 쿠팡사례 연구는, 다시 사례로 들어가 구체적인 질적 차원을 재해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연구자의 공감과 거리두기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공감 없는 거리두기 기반 비판은 현실과 유리된 추상이 되고, 비판적 거리두기, 거시적 관점이 없는 공감은 구조적 변화를 추동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연구자의 과제는 이 둘을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실천하는 것, 즉 공감하면서 분석하고 분석하면서 공감하는 이중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사용자를 가시화하는 작업은 바로 이 긴장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글. 이승윤(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